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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태풍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서 많은 걱정을 했던 오사카 혼자여행 셋째날.

오사카 근교의 교토에 다녀왔다.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메다 역에서 하루짜리 한큐패스를 구매하여 교토에 다녀오는 것이다. 한큐패스 사면서 교토 간다고 얘기하면 친절하게 어디서 내리라고 설명도 해준다.


난바 근처의 숙소에서 교토에 가기 위해 우메다 역으로 가는 길에만 해도 가랑비 정도였던 비가, 기차를 타고 교토에 내리는 순간 폭우로 변하더니 이내 태풍으로 변했다.


원래 교토에서의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교토 도착 -> 점심식사 -> 나시혼간지 -> 철학의 길 잠시 걷기 -> 요지아 카페 -> 은각사 -> 키요미즈테라 -> 카네쇼 장어덮밥 먹기 -> 시내 구경 -> 오사카로 복귀


하지만 태풍 덕분에, 그리고 철학의 길에 홀려서 내 일정은 이렇게 단순해졌다.


교토 도착 -> 요지야 카페 -> 철학의 길 2시간 걷기 -> 은각사 -> 철학의 길 또 2시간 걷기 -> 오사카로 복귀

(이날 호텔로 돌아와 헬스 어플을 켜보니 5만보를 걸었다..)



교토의 주택가


태풍이 너무 심해 요지야 카페에서 잠잠해지길 기다리려고 했다. 하지만 엉뚱한 정류장에서 내려버렸고, 다행히도 태풍이 잠잠해 지고 있는듯 하여 걷기로 결정. 교토 주택가를 걸었다.

태풍 직후의 교토는 너무도 고요하고 신비로웠다. 


사람 하나 없는 저 길을 너무나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혼자 걸었다.

내 평생 다시는 경험해 보지 못할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요지야 카페


그렇게 도착한 교토 철학의 길에 있는 요지야 카페. 태풍이 오고 바람이 강한 와중에 마치 태풍의 핵같이 고요해서 작은 소리를 내는것 자체가 죄를 짓는것 같은 기분이었다.


요지아 카페의 마스코트가 반겨주는 신비롭게 생긴 입구로 들어오면 아름다운 정원이 보인다.

무언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고요한 카페에 앉아 큰 창을 통해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본다.

밖은 다시 강해진 태풍으로 강한 바람소리와 빗소리로 시끄럽지만, 

카페 내부는 극단적으로 고요 하다. 세상과 단절된 곳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태풍이 심한 날이라 손님이 많지 않았는데, 몇 안 되는 손님들도 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것 같다. 일행이 있어도 누구하나 이야기하지 않을 정도였다.




요지야 카페의 메인 셋트인 요지야 셋트.

특이하고 예쁜 라떼아트 때문에 마시기 미안했다.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많은 녹차 음료를 마셔 봤지만, 이곳의 녹차 라떼는 그 중 최고였다.

이런 신비로운 분위기에서 마시는 이런 맛있는 음료라니.




철학의 길


요지야 카페에서 한시간 반을 멍때리고 있다가 빗소리가 점점 잦아드는듯 하여 비에 다 젖은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카페를 나섰다.

카페로 올때는 강한 태풍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태풍이 잦아들고 보슬비가 내리는 철학의 길은 정말 내 인생 최고의 풍경이었다.



교토대학의 교수이자 철학자인 니시다 기타로가 산책하며 사색을 즐긴 길이라 하여 사람들이 '철학의 길'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세상에 나 뿐인듯 사람 하나 없는 고요함 속에 사진에 다 담을 수 없는 색감과 소리, 공기와 냄새까지. 이런 길이 끝을 모르고 이어져 있다. 나는 은각사에 가겠다는 다음 목표도 잊고 이 길을 두시간 가까이 걸었다.

나는 원래 여행에 있어서 상당히 계획적인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더 특별했던 것 같다. 

두시간을 걸어야지! 하고 걸어다닌게 아니라 그냥 아무 생각도 없었고 그 모든 풍경과 소리들, 공기에 감탄하며 걷다보니 두시간이 지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구글 맵을 실행해 은각사를 검색했다.

지금 와있는 위치에서 다시 돌아 왔던 철학의 길을 다시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왜 기분이 좋았을까?

이번에는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들으며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왜 혼자 여행을 가는지도 알 것 같았다.



은각사


그렇게 도착한 은각사 초입.

태풍이 그친 뒤라 그런지 숨어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나 운치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은각사가 나온다.

철학의 길에서 두시간 넘게 나 혼자 있다가 사람들을 보니 그 나름대로 또 반가웠다.




정원이 참 잘 되어 있는 절이라고 들었는데, 그래서있지 아래쪽에서 본격적으로 정원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정원과 조경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에 둘레길을 쭉 따라 올라가서 높은곳에서 전경을 감상했다. 교토 시내까지 한눈에 보이는 전경에 속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은각사에서 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하려다, 어차피 반 이상 지체된 시간이니 철학의 길을 한번 더 걷기로 했다. 혹시나 나중에 교토에 다시 오더라도, 평소에는 나무보다 사람이 더 많은 관계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조차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태풍이 오는날의 교토. 최악의 하루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나에게는 내 인생 최고의 하루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의 황홀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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