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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2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여행을 떠나자."

여행은 인생의 급속충전기 같은 느낌입니다. 정말 몸이 안좋을 때 수액을 맞고 푹 자면 금방 털고 일어나는 것 처럼, 여행은 인생의 활기를 빠르게 채워주는 묘약입니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뿐만 아니라 태국, 인도, 대만, 홍콩 등 아시아까지 정말 많은 나라를 다녀왔고 그만큼 많은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제 모든 여행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순간을 꼽자면,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 교토 철학의 길에서의 다섯시간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 은각사, 요지야카페와 묶어서 한번 포스팅을 했지만 제 인생 최고의 여행지였던 "교토 철학의 길" 을 다시한번 포스팅 하려고 합니다.




사실 철학의 길에 들어서기 직전까지도 아무런 기대가 없었습니다.

교토대학의 교수인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산책하며 사색을 즐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 철학의 길. 많은 비가 내리던 날, 저는 그 곳을 무려 다섯시간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철학의 길로 향하는 길, 너무 많이 내리는 비에 그냥 호텔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많다던 쿄토의 거리에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죠.



버스에서 내려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여행을 가면 항상 그 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주택가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대로변이 아닌 주택가 골목안으로 들어왔더니 길을 잃어버렸어요.

철학의 길은 산 초입에 있다고 하니 그냥 산이 보이는 쪽으로 골목을 걷고 걸어 올라갔습니다.

많은 비 덕분교토라는 큰 도시 골목 골목에 나 혼자만 있는 듯한 신비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정말 너무 행복했어요.



그렇게 들어선 철학의 길 초입입니다.

사실 여행지를 정할 때, 많이 알아보고 블로그 글들도 많이 읽어보고 정하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목적지에 오면 마치 와본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죠. 하지만 제가 본 많은 철학의 길에 관한 포스팅들에는 대부분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이었어요. 길 이름은 "철학의 길" 인데, 전혀 사색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듯 보였죠.

이 날 저는 철학의 길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사색을 하며 걷던 그 순간의 철학의 길로 와 있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길은 보통 은각사에 들리며 거쳐 가는 관광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사실 철학의 길의 길이는 굉장히 길어요. 끝에서 끝까지 도보로 2시간 이상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저는 은각사도 보는둥 마는둥 하고 당일치기 교토 일정 전체를 취소해 버리고 철학의 길을 걸었습니다.



초록으로 가득한 산 중턱, 비가 와서 불어난 작은 개울 옆에 난 좁은 길을 끝없이 걸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서 여행을 할 때에는 나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을것 같지만, 사실 관광지를 다니다 보면 결국 많은 군중 속에 있게 되죠. 그래서인지 생각할 여유가 그렇게 많지 않더군요.

이날은 어쩌면 제 인생 전체에서도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철학의 길을 하염없이 걸으며 어린시절 짝꿍부터 중고등학교때의 추억, 대학교 군대에서 지금까지 오만 추억들이 다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그 추억들을 돌아보며 지금 사회인이 되어 그냥 의미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제 모습에 대한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머리속에서 모든 생각을 다 비우고 그냥 걷기만 했습니다. 마치 머리속에서 온갖 나쁜 것들을 포멧시켜 버리듯 말이죠.




그렇게 사람 하나 없는 숲속 길을 몇 시간을 걷다 보니 조금 외롭더라구요.

혼자 여행을 와서 한번도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외로웠어요. 철학의 길 끝을 찍고 다시 돌아서 반대편 끝으로 가던 중에 문득 외롭다는 생각을 하고 가장 먼저 보이는 내려가는 길을 따라 다시 주택가로 내려왔습니다.



교토의 주택가는 그냥 보면 한국 산골짜기 시골 풍경같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일본스러움이 묻어 있습니다.

평생을 서울에서만 살다 보니 저런 풍경이 너무 아련합니다.



또 길을 잃었습니다. 구글 맵을 켜보니 버스가 다닐만한 대로까지 한참을 걸어야 하더군요.

만보계는 이미 제가 5만보를 걸었다고 알려줍니다. 슬슬 목도 마르고 너무 힘들어서 카페가 보여 쉬었다 가려고 했지만 문을 닫았어요. 



자판기에서 뽑은 이 밀크티 한잔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같은 밀크티를 발견하고 너무 반가워서 사먹어 봤지만 그때 그 맛이 안나더라구요.



철학의 길을 걷느라 나머지 교토 일정을 통으로 취소해 버리는 바람에 돌아가는 길이 살짝 아쉬웠습니다. 물론 후회는 없지만, 교토의 다른 곳들도 그만큼 좋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며 교토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또 한시간을 걷다 보니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 정신을 차리니 해가 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간 뒤 호텔이 있는 오사카로 돌아갔습니다.


어쩌면 다시 교토를 방문하더라도 이 때 만큼의 감흥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비와 엄청난 운이 저에게 이만큼 완벽한 교토를 선물해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 어느 곳보다 좋았고, 그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는 교토지만 다시한번 가보는 것이 꺼려지는 이유가 바로 다시 갔을 때 이전만큼의 감동을 받지 못할까봐서 입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꼭 가봐야겠죠 :)


혹시 교토 여행 계획이 있는데, 그 날 많은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걱정이신 분들은 오히려 저처럼 놀라운 여행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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